모래땅에서 최첨단 신도시 거듭난 여의도

빅데이터와 인터뷰를 통한 주기별·계층별 여의도 도시공간 이용과 일상 파악

소비자를 위한 신문 | 입력 : 2020/06/26 [16:30]

서울역사박물관(관장 송인호)은 2007년부터 서울의 지역조사를 10년 넘게 지속해왔다. 그 32번째 시리즈로 2019년 여의도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의 결과를 담은 『여의도, 방송과 금융의 중심지』보고서를 2020년 5월 발간했다.

 

여의도는 조선 전기 이래 주로 국가가 관리하는 짐승을 기르는 목축의 공간으로 이용되었다. 세조 대 세도가인 한명회가 지은 정자 ‘압구정(狎鷗亭)’이 현재와는 달리 처음에는 여의도에 있었다가 나중에 동호로로 옮겨갔다. 그리고 소수이지만 여의도에 대를 이어 정착해 사는 사람들이 폐쇄적인 섬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군은 여의도를 군용지로 매수하고 거주하는 농민을 퇴거시켜 1916년 간이비행장을 건설하였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비행장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4년 4월 26일 여의도 국제공항이 정식 개항하였다. 하지만 홍수에 취약했던 여의도의 국제공항 기능은 1961년 김포로 완전히 옮겨갔다. 1964년 4월에는 국내 항공노선까지 김포공항으로 이전함에 따라 여의도 민간 항공 시대는 완전히 끝이 났다.

 

1967년 한강의 치수와 매립지 확보를 위한 ‘한강개발 3개년 계획’으로 시작된 여의도 개발은 1968년 2월 밤섬이 폭파되며 개발이 본격화되었다. 밤섬을 골재로 사용한 윤중제가 밤섬 폭파 5개월 만에 완공되며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넓은 대지가 만들어졌다.

 

여의도는 당시 근대화·산업화로 변해 가는 도시의 이미지와 국내의 발전하는 기술을 알리기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김수근을 중심으로 한 젊은 건축가들의 여의도 개발안을 시작으로 최첨단의 아파트단지, 고층의 업무시설, 국내 기술과 국내 재료를 사용한 국회의사당 등이 하나둘씩 완공됐다. 또한 군사퍼레이드, 반공 관제 시위가 열리던 5·16광장이 완성됐다.

 

1980년대 들어서며 새로운 정권의 정당성을 위해 5·16광장의 이름을 ‘여의도광장’으로 바꾸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며 시작된 한강개발계획에 따라 한강시민공원이 재정비되고 유람선이 다니기 시작하였다. 여의도 동쪽 끝에 당시 동양 최고의 63빌딩이 완성되어 발전된 서울의 모습을 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에 선보였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후 관제 집회가 열리던 여의도광장은 대통령 유세와 시민 주도의 시위가 줄을 이었다. 1995년 서울 민선시장이 부임하며 국가권력의 상징이었던 여의도광장은 ‘여의도공원’이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초고층 빌딩들이 등장하였고,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이 변화했다.

 

 

1976년 KBS가 여의도에 신사옥을 건설한 이후 1980년 TBS, 1983년 MBC가 여의도로 이전하였다. 1990년 SBS도 여의도에서 개국하며 여의도는 한국 방송산업을 대표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2014년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로 SBS와 MBC가 이전하며 현재 여의도에는 KBS만이 남아 한국방송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방송사들이 여의도에 밀집하며 자연스럽게 여의도의 방송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고, 방송산업은 여의도의 주요산업 중 하나가 되었다. 방송산업과 연관된 산업들의 밀집으로 인한 공간의 변화와 문화는 여의도를 표현하는 여러 특징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기네스북에 올라간 세계 최장 생방송 기간은 ‘138일 453시간 45분’으로, 1983년 KBS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이 기록돼 있다. 1983년 6월 30일 밤 120분 분량의 프로그램이 나간 이후 KBS는 이산가족을 찾는 벽보로 뒤덮이게 됐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총 1만 189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하였는데, 6·25전쟁(38.8%)과 1·4후퇴(26.9%)때 헤어진 형제자매(50.1%)를 찾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프로그램 관련 2만 522건의 기록물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 개최로 인해 여의도에는 국제방송센터가 건립되었다. 올림픽 주관방송사인 KBS는 국제신호를 제작해 세계 방송기관에 공급하는 역할과 함꼐 국제방송센터를 설치·운영 하였다. IBC는 올림픽경기가 진행되는 각 지역에서 송출된 국제신호를 취합해 다시 각 방송사로 분배하는 역할을 하며, 개별 방송 설비를 가동하는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금융의 중심은 명동에서 여의도로 이동했다. 1978년 증권감독원(현 금융감독원)이 여의도 화재보험빌딩으로 이전했고, 1920년대 이래 명동에 위치했던 한국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도 1979년 여의도로 자리를 옮기며 여의도 금융시대가 열렸다. 1980년대 중반 경제 호황으로 성장한 증권사들은 거래 업무 전산화가 진행되면서 빠른 전산거래를 위해 여의도 거래소 내 전산시스템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기 위해 여의도로 이전했다.

 

금융인의 책상은 업무별·직급별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의 경우 주로 2~3개의 모니터를 사용하며, 한쪽 모니터에는 주식시장 다른쪽 모니터에는 메신저와 뉴스 등을 이용한다. 반면 트레이더는 6개의 모니터를 활용한다. 2개의 모니터에서는 메신저와 뉴스·이메일을 이용하고, 또 다른 2개의 모니터에는 주식시장 현황과 매매 트레이딩 시스템을 사용한다. 나머지 2개의 모니터는 국내외 고급 정보 검색이 가능한 블룸버그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다.

 

여의도에는 다른 지역과 달리 색다른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곳들이 있다. 여의도백화점 지하 1층에 있는 ‘여백 노래방’은 점심시간에는 주로 커피와 음료를 판매하는데, 커피 한 잔의 가격으로 넓은 소파에서 낮잠을 청할 수 있기 때문에 여의도 금융인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또 IFC몰 내 위치한 여의도 CGV는 매주 월요일~목요일 11시 30분부터 13시 사이에 ‘프리미엄 시에스타’를 상시 운영중이다. 이곳은 본래 프리미엄 영화 상영관이지만 점심시간을 이용해 직장인들을 위한 낮잠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수명이 짧은 증권맨의 특성상 은퇴 후 전업투자자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대개 여의도에 둥지를 튼다. 증권맨들은 30대 중후반부터 전업투자자가 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치열한 경쟁문화에서 받는 압박감과 박약한 인센티브 때문이다. 이러한 전업투자자는 출신에 따라 ‘애미(애널리스트 출신)’와 ‘매미(펀드매니저 출신)’로 구분한다.

 

전업투자자들의 사무실을 ‘부티크(소규모 비공식 투자회사)’라 부르는데, 부티크는 비합법적인 자산운용사란 인식이 강하다. 이들은 매우 치밀하게 고객 계좌를 운영하기 때문에 적발이 힘들다. 부티크로 시작해 법인 신고를 통해 자문사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로컬데이터(localdata.kr)에서 공개된 일반음식점과 휴게음식점의 개·폐업 데이터를 활용하여 분석한 결과 여의도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전문점은 1997년 개업한 ‘하드 앤 빈스’이며, 두 번째로 오래된 커피전문점은 금융로2길에 있는 ‘스타벅스’로 확인됐다.

 

여의도 식당의 평균 영업기간은 12.8년으로 10.3년인 서울 평균보다 2.5년이 더 많으며 10년 단위로 구분해보면 30년 이상 된 업소가 전체 식당의 11%를 차지한다. 이 중 비교적 최근 개발된 여의도공원 주변을 제외하고 오래된 음식점은 여의도 일대에 고르게 분포한다. 1970년대에 개업한 음식점은 총 12개이며, 이 중 중식당이 5개를 차지한다.

 

2018년 6월 1일부터 2019년 5월 31일까지 생활인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서울에서 따릉이 이용량이 가장 많은 대여소는 ‘여의나루역 1번 출구 앞’이었다. 대여와 반납을 모두 합하여 158,194건, 하루 평균 433건의 대여와 반납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의나루역 1번 출구는 한강과 경인로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서울 전체 따릉이의 허브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강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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